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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ESSAY/일상STORY2

동방 왕자와 서방 황제의 대화

by imfree21 2023. 7. 11.

고대 로마제국 시대 동방(오리엔트)이라 불렸던 페르시아의 문명에 대한 그들의 자긍심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대화 한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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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우스(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아들)황제가 도나우강 전선의 게르만족과 전투에서 승리하고 개선식을 거행하여 로마에 입성하게 된다. 콘스탄티우스는 로마황제였지만 일리리쿰의 시르미움(지금의 크로아티아 동부, 세르비아공화국 서부)에서 태어나서 줄곧 동방에서 활약했다. 그래서 이 때(39세) 처음으로 로마를 보았다. 로마 광장의 건축물, 예술품을 며칠동안 돌아보며 내심 감동에 빠진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마침내 트라야누스포룸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트라야누스황제의 기마상을 보고는 자기도 만들게 하고 싶다고 한마디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페르시아에서 망명한 왕자 오르미즈드가 대답한다. 

"폐하, 기마상을 만들게 하기 전에 이 포룸 못지 않은 마굿간을 짓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완성된 폐하 기마상의 말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콘스탄티우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말로 질 수 없다고 생각하여 물었다 

"지금까지 로마를 보고 어떤 감상을 느꼈는가?"

그러자 페르시아 왕자가 담담히 말했다.

"이만한 것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역시 마지막에는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더니, 겨우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타키투스의 뒤를 잇는 로마역사가가 되겠다던 암미아누스의 기록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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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기록을 보면 페르시아 왕자의 말에서 흥미로운 두가지 시사점을 알 수 있다. 당시 페르시아 건조물(문명)의 규모에 대한 자부심과 로마는 별 것 아니라는 페르시아인의 자긍심이 남다르다는 것, 그리고 화려하고 거대한 건조물을 통해 만인에게 강력한 권력자임을 과시하려 하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므로 헛된 욕망에 불과하다는 인생무상의 메세지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결국 콘스탄티우스황제는 기마상은 포기하고 대신 이집트에서 오벨리스크를 가져다가 세웠다. 그 오벨리스크는 아버지 콘스탄티누스가 가져와 세우려다 중단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에 방치되어 있던 것이었다. 콘스탄티우스 오벨리스크는 지금 로마 4대 교회의 하나인 성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광장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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