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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TRAVEL/자전에세이

모친 기일 10주기 상념

by imfree21 2022. 3. 18.

어머니는 선친의 44주기 기일 하루 전에 운명하셨다. 병원에 입원한지 3일만이다. 황망했다. 평일과 다름없이 퇴근 후 병원에 문안드리러 갔는데 나의 손을 잡자 눈빛이 흐려지더니 그만 그 길로 떠나셨다.

얼마나 아버지를 사모하셨다고~ 기다리다 기일 하루 앞두고 돌아가셨나~.

그래서 선친의 기일에 합제를 지낸다.

 

<1945년 8월 15일 옆집 친척 동서가 형님, 형님 하고 부르면서 "해방되었대요"하는데 나는 그려,그려 하면서 “아이고, 원수놈들 1년 전에 항복하지, 그랬으면 내가 결혼 안했을텐데~~.” 하고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이 붓도록 울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냉정하여졌다. 잘 웃어지지도 않고, 말도 하기 싫어지고. 이튿날 아랫집에서 온 질부(조카며느리)가 해방되었다고 전해도 냉랭하였고 "좋지요?" 하는데 시큰둥하게 "응,응" 하였더니 "왜 숙모가 그리 냉정하오" 하였다. 나는 눈물만 흘렸다.> (운명하신 뒤 발견한 어머니의 노트 '내가 걸어온 길'에서)    

 

여학교 졸업하는 해. 처자는 수원의 농촌진흥청의 부녀지도자 양성 연수를 기다리며 미래를 향한 부푼 꿈을 설계해 놓았는데 처자의 고향집에서는, 친분있는 그 지역 기관장이 '일제에 징발될 수 있다'라고 귀뜸해 준 말을 듣고 처자의 아버지(내 외조부)가 서둘러 선친(내 아버지)과 혼인을 시켰다고 한다(1944. 당시는 대동아전쟁-세계 제2차대전- 절정기였다). 이듬해 초에 신행(新行.신부가 신랑집에 처음 가는 것)을 왔는데 8월에 해방이 된 것이다. 아버지(외조부)야 외동딸의 안전을 위해 서둘러 취한 어쩌면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그 처자에게는 평생의 한 맺힌 사건이 된 것이다.

 

어머니의 노트에는 개인의 한맺힌 일생을 차분히 서술해 놓았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여성 또는 어머니가 감내하고 살아온 절절하며 가슴아픈 기록들이 가득하다. 오랫동안 냉랭하게 방치했던 기록을 보며 가슴이 젖는다.

 

모친 운명하신지 10주기 기일에. 

(202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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