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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BOX/준비중

안자춘추 요약(펌)

by imfree21 2016. 9. 27.

안자(晏子)의 안자춘추

출판사 동문선, 한글고전총서 4, 임동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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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

앞서 성경책의 잠언을 소개할 때 기원전 1100 년 경의 인물에 대해 말했다. 그 후 500 년이 지나면 동 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상 뛰어난 사람이 많이 나타난다. 앞으로 다시 2000 년이 지나더라도 이 기원전 600 년을 전후하여 활동한 사람들의 업적은 계속 남아 새로운 사람들에게 지혜를 전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 - BC 645)과 포숙이 나타나서 제나라의 환공을 춘추시대의 첫번째 패자(覇者)로 만든다. 관중의 뛰어난 점은 국가를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하여 이를 바탕으로 무력(武力)을 충분히 갖춘 다음,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중국 전체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또한 불리할 경우라도 약속을 지켜 다른 나라들이 제나라를 믿도록 만들었다.


관중이 죽은 후 30 년 이내에 서양에서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한 탈레스(Thales, ? - ? )가 나타나 서양 학문의 기초를 세웠다. 탈레스의 생존 년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기원전 585 년에 일식을 예언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관중보다 후대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다음 곧 피타고라스(BC 580 - BC 500)가 태어나 기하학의 기본을 만들었다. 이번 방학에 심심하게 느끼는 때가 있으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해 보는 재미를 맛보기 바란다.(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 "군자는 심심한 적이 없다.")

이번에 소개하는 안자의 태어난 해를 알지는 못하나 피타고라스와 같은 해(BC 500)에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안자도 상당한 수명을 누린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두 사람의 나이의 차이가 10 살 이내일 것이다. 안자가 기원전 556 년에 대부(大夫)가 되었는데 이 해에 공자(BC 551 - BC 479)는 다섯 살이었다. 참고로 공자의 수제자 안자(顔子, 안회 BC 514 - BC 483)는 다른 사람이다.


공자와 노자(老子)가 만나 이야기 한 기록이 있고 이 때 노자가 훨씬 늙었었다고 하니 안자와 노자는 거의 같은 나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석가의 나이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우리나라 불교에서 말하는 것으로는 올해가 탄생 2544 주이니 공자보다 7 살 아래이다(BC 544 - BC 480, 어떤 책에서는 BC 566).

중국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의 하나인 오자서(? - BC 484)는 공자와 거의 같은 나이였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리고 공자가 죽은 후 9 년 후에 소크라테스(BC 470 - BC 399)가 태어난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플라톤(BC 4728- BC 348)이고, 플라톤의 제자가 아리스토텔레스(BC 384 - BC 322)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흔히 대왕이라고 말하는 알렉산더(BC 356 - BC 323)이다.

동양에서의 그 후의 발전은 너무 다양하여 흔히 제자백가(諸子百家)라는 말로 표현한다. 유가에는 자사(BC 483~402), 맹자(BC 371 - BC 289), 순자(荀子 BC 300 - BC 230 ), 도가에는 노자(老子장자(莊子), 묵가(墨家)에는 묵자(墨子BC 470(?) - BC 391(?)), 법가(法家)에는 상앙(? - BC 338)·한비자(韓非子, ? - BC 233), 명가(名家)에는 혜시(惠施, BC 380 - 310)·공손룡(公孫龍, BC 320(?) - BC 250)이 있다.


자사가 저술한 <중용>은 이미 소개하였으며, 맹자는 다음에 따로 소개가 나갈 것이다. 순자에서 공손룡에 이르는 사람들의 가르침은 한 번에 엮어서 소개할 예정이다.

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논리를 개발하고, 그 논리가 인류의 나가는 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대단한 천재들이 짧은 시기에 몰려있었던 시대는 그 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동양과 서양의 교류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에 지구상의 인류의 지혜가 갑자기 발전한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위에 언급한 사람들의 생존 연대를 간단히 정리한다.


관중 ? - BC 645

탈레스 Thales ? - ? BC 585에 일식 예언

피타고라스 Pythagoras BC 580경 이오니아 사모스~BC 500경 루카니아 메타폰툼

노자(老子)

안자(晏子) ? - BC 500 BC 556 년 대부가 됨

공자(孔子) BC 551 - BC 479

석가 BC 544 - BC 480, 어떤 책에서는 BC 566

오자서 ? - BC 484

안자 顔子, 안회 BC 514 - BC 483

자사 BC 483 - BC 402

묵자 墨子 BC 470(?) - BC 391(?)

소크라테스 BC 470 - BC 399

플라톤 BC 428- BC 348

상앙 ? - BC 338

아리스토텔레스 BC 384 - BC 322

혜시 惠施, BC 380 - 310)

맹자 BC 371 - BC 289

장자 ? - ? 맹자와 거의 같은 시대, 그러나 각 책에 서로에 대한 언급이 없음

알렉산더 BC 356 - BC 323

공손룡 公孫龍 BC 320(?) - BC 250)

한비자 韓非子 ? - BC 233

순자 荀子 BC 300 - BC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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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

안자는 존칭이며, 이름은 안영이고, 자는 평중(平仲) 이다. BC 556 년 아버지 안환자(桓子)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제나라의 대부가 되었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군주인 영공, 장공, 경공을 섬겼다.

이미 소개한 사마천의 <사기 열전>의 안자에 대한 부분을 다시 적는다. 동양의 역사상 사마천의 문장은 최고의 경지에 다달았다고 인정되어왔다.

"그 뒤[관중이 죽은 후] 백여 년이 지나서 안자(晏子, 안평중 영)가 나타났다.

제나라의 영공, 장공, 경공을 섬겼는데 절약하고 검소하며 힘써 실행하는 것으로 제나라에 중용(重用)되었다. 그가 이미 제나라의 정승이 된 뒤에도 반찬으로 두 가지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집안 여자들은 비단옷을 입지 않았다.

임성삼의 주(); 옛부터 100 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제나라를 부강하게 한 두 사람의 정승, 관중과 안자의 성격을 비교한다. 관중은 사치스러웠으나 안자는 매우 검소하였다. 관중에 대해서는 공자님도 논어에서"소인"이라고 평하나 안자에 대해서는 누구나 좋게 평한다.]


그가 조정에 있을 때에 임금이 그와 말하게 되면 그의 말은 정당하고 정직하였으며, 임금이 그와 말하지 않을 때에는 그의 행동은 고결하고 올발랐다.

[임성삼의 주(); 이렇게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자.]

나라에 바른 도가 있을 때는 곧 명령에 순종하고, 나라에 바른 도가 없을 때엔 곧 명령이 바른 것인가 그른 것인가를 저울질하여 바른 것이면 좇고 바르지 않은 것이면 좇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3 대 동안 제후 사이에서 이름을 날렸다.

[임성삼 주(); 젊었을 때의 생각으로는 이것이 쉬운 것 같으나,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특히 공무를 담당했을 때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내 나이가 되도록 거의 보지 못하였다.]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관씨의 저서 <관자>에서 목민, 산고, 승마, 경중, 구부 등의 각 편과 안자의 저서인 <안자춘추>를 읽었다. 그 말한 것이 자세하였다.

가령 안자가 지금 살아있다면 나(사마천)는 비록 그를 위하여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도 즐겨 할 정도로 그를 흠모한다.

[임성삼 주(); 사기 전체에 걸쳐서 사마천이 이 정도로 존경하는 인물이 안자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이 두 책이 우리말로 번역하여 출판되어 있다. 후에 안자춘추를 소개할 것이다.]"

이상이 6 번째 책 소개에서 안자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다. 안자춘추를 소개하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


다음은 안자에 대한 백과사전의 내용이다.

안영 COPYRIGHT (C)한국브리태니커회사, 1999

?~BC 500.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정치가.

자는 평중(平仲). BC 556년 아버지 안환자(晏桓子)가 죽고 그 뒤를 이어 제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었다. 영공(靈公장공(莊公경공(景公)을 섬겼으며 근검절약하고 힘써 노력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최서가 장공을 살해했을 때 장공의 시체 위에 엎드려 곡()을 했지만 사람들의 신망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면했다.

[임성삼의 주(); 최서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의 이야기이다.]

BC 517년 혜성이 나타나 두려워 떨고 있는 경공에게 사치를 삼가고 세금을 줄이고 형벌을 가볍게 하면 재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간(忠諫)했다. 이같은 충직한 성품 때문에 관중(管仲)과 함께 제나라의 명신(名臣)으로 일컬어진다. 안자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안자춘추 晏子春秋(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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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


1 장 충간(忠諫)에 관한 이야기들 상()

p 37

제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한철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이제 경공[任註; 景公, 춘추시대 제나라의 임금, 재위 BC 547~490, 참고로 공자 BC 551~BC 479]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물었다.

"하늘이 너무 오랫동안 비를 내려 주지 않는군요. 백성들은 모두 주린 기색입니다. 내 사람을 시켜 점을 쳐보았더니, 고산(高山)의 광수(鑛水)가 그 빌미라 합니다. 그래서 과인이 약간의 세금을 거두어 그 비용으로 영산(靈山)에 제사를 지내고자 합니다. ()하겠습니까?"

[임성삼의 주(); 위의 말에서 생각해 볼 사항은 다음과 같다.

가뭄과 같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점을 쳐야 하는가? 가뭄의 원인이 점으로 밝혀질 수 있는가? 점의 결과 제사를 지내야 한다면 그대로 해야 하는가? 그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가뭄에 시달리는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야 하는가?]

여러 신하들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자, 안자가 나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안 됩니다. 그런 제사를 지내도 이익이 없습니다.

무릇 영험한 산이라 할지라도 사실은 돌로 몸을 삼고, 초목으로 머리카락을 삼고 있습니다. 하늘이 오래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그 머리카락은 타고, 그 몸은 더워서 견딜 수가 없겠지요. 그러니 산인들 홀로 비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거기다가 제사를 지낸다고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임성삼의 주(); 탁월한 분석이다. 만일 산에 마음이 있다면 실제로 비를 기다림은 산이 더 할지 모른다.]

그러자 경공이 다시 말을 바꾸었다.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나는 하백(河伯)에게라도 제사를 지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떻습니까?"

 이에 안자가 다시 반대하였다.

"안 됩니다. 하백(河伯)은 물을 나라로 삼고, 어별(魚鼈)을 백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늘이 오랫동안 비를 내려 주지 않으면, 샘물을 자꾸 말라 낮아지고, 온갖 냇물도 말라 버릴 것이며, 결국은 강도 마를 것입니다. 그러니 하백(河伯)인들 어찌 저 홀로 비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런 하백에게 제사를 지낸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임성삼의 주(); 안자가 원하는 것은 백성에게 부담을 지우는 제사를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 경공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에 안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임금께서 진실로 궁전을 피해 들에 나가 햇볕을 쬐고 노숙하며, 저 영산과 하백의 근심을 함께 한다면, 혹시 비가 내리는 행운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임성삼의 주(); 어차피 가뭄이 오래 계속되면 비가 올 확률이 커진다. 이 때에 왕이 근심하는 것을 백성에게 보여주기 위해 들에 나가는 것은 해가 되지 않는다. 결국 비는 오고야 마는 것이므로. 그리고 이것은 돈이 드는 행사도 아니다.]

그리하여 경공이 들에 나가 노숙하고 햇볕을 쬐기를 사흘, 과연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렸다. 백성들은 모두 씨 뿌릴 시기를 얻게 된 것이다. 이에 경공이 이렇게 감탄하였다.

"훌륭하도다! 안자의 말이여. 어찌 귀담아듣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덕 있는 말이로다!"

[임성삼의 주(); 비가 와서 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힘들 때 세금을 더 내게 하는 것을 막은 것이 덕이 있는 것이다.]


p 40

경공(景公)이 우산(牛山)을 유람하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처럼 광활한 나라를 두고 어찌 죽을 수 있겠는가?"

그러자 곁에 있던 신하들도 이 소리를 듣고 안타까워 울었다.

[임성삼의 주(); 신하들은 왜 우는가? 이 광활한 나라가 그들의 것이었던가?]

그런데 안자만이 홀로 그 곁에서 웃고 있었다. 경공이 눈물을 닦으며 안자를 돌아보고 물었다.

"과인은 오늘의 유람에서 슬픔을 느꼈습니다. 다른 신하도 나를 따라 울고 있는데 그대만이 홀로 비웃고 있으니 무슨 연유입니까?"

안자가 이렇게 설명하였다.

"어진 이라고 해서 항상 세상을 지켜 끝까지 죽지 않는다면, 태공[任註; 太公, 흔히 말하는 강태공으로 제나라의 시조, BC 1100 년 경]과 환공[任註; 桓公, 관중의 임금, 춘추 5 패 중의 첫 사람, BC 685~643 재위]께서 지금까지 계속하여 임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또 용감한 자로 계속 세상을 지키게 할 수 있었다면, 영공과 장공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 것입니다.

이상의 몇 분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면, 임금께서는 무슨 지위로 여기에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 분들이 차례로 떠나서 지금 임금에게까지 이른 것인데, 그런 일로 눈물을 흘리시다니 이는 어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어질지 못한 한 임금과, 아첨에 뛰어난 신하들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홀로 웃고 있는 까닭입니다."

[임성삼의 주();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 중의 하나는 이 정도의 분석이 순간적으로 나오게 되는 실력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굳건하게 이러한 옳은 말을 할 수 있는 강한 성격을 가지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 41 [임성삼의 주(); 위와 거의 동일한 내용이나 거듭 싣는다]

경공이 공부[지방의 이름]에 가서 노닐다가, 멀리 북쪽을 조망하여 제나라 경내를 구경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옛부터 죽음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안자가 이 말을 받아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 상제(上帝)께서는 사람의 죽음을 좋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어진 이는 쉴 수 있고, 어질지 못한 이는 죽음에 굴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만약 옛부터 죽음이 없었다면 태공, 정공이 나라를 가지고 있을 것이며, 환공, 양공, 문공, 무공[任註; 모두 제 나라의 유명한 왕들]은 그 재상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임금께서는 삿갓에 갈의(葛衣)를 걸치고, 괭이로 농사나 지으면서 저 밭두둑가를 오가는 농부에 불과할 텐데 죽음을 걱정할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임성삼의 주(); 통쾌하다.]

이 말에 경공이 분연히 불쾌한 기색을 하였다.

[임성삼의 주(); 당연하다. 그러나 이 왕과 같이 바보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정도의 말을 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  

...

나중에 안자가 죽었을 때, 경공이 병풍을 열고 안자의 시신에 가까이 다가서며 이렇게 애도하였다.

"! 지난날 선생과 함께 놀이를 갔을 때, 선생께서는 하루에 세 번이나 나를 책하셨지요. 이제 그 누가 과인을 책하여 주리요?"


p 52

경공이 어인( 말을 기르는 관리)으로 하여금 자기가 사랑하는 말을 돌보도록 하는 임무를 맡겼는데, 그 말이 갑자기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이에 경공은 노하여 칼을 가져오도록 하여, 그 말 기르던 자를 해체(解體)하라고 명하였다.

이때 안자도 그 앞에 경공을 모시고 있었다. 좌우에서 칼을 들고 들어오자, 안자가 이를 저지하며 경공에게 물었다.

"옛날 요(), () 임금 시대에는 사람의 사지(四肢)를 해체할 때, 몸의 어느 부분부터 하였습니까?"

그러자 경공이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과인이 그런 짓을 처음 시작하는 꼴이 되겠군"하고는 드디어 그 일을 철회하고 말았다.

임금이 옥에 가두라고 명하자, 안자가 다시 나섰다.

"이는 자신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죽는 것이니, 청컨대 제가 임금을 위해 그 죄를 책망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스스로 그 죄를 알게한 후에 옥에 가두시지요!"

이에 경공이 좋다고 말하자, 안자가 일일이 그 죄목을 들어 이렇게 책망하였다.

"너의 죄는 세 가지이다.

임금께서 너에게 말을 기르도록 명하였는데, 너는 이를 죽게 하였다. 이것이 첫 번째 죽을 죄이다.

또 임금께서 가장 아끼는 말을 죽게 하였으니, 이것이 두 번째 죽을 죄에 해당한다.

그리고 임금으로 하여금 그까짓 말 한 마리 때문에 사람을 죽일 뻔하도록 하였다.

백성들은 이를 듣고 반드시 우리 임금을 원망할 것이며, 제후들이 들으면 반드시 우리 나라를 가볍게 여기게 될 것이다.

너 하나가 임금의 말 한 마리를 죽임으로써, 임금으로 하여금 백성에게 원한을 쌓고 이웃 나라에게는 나라의 위세를 약하게 보였으니, 이것이 죽음에 해당하는 세 번째 죄이다. 그러니 너를 옥에 가두겠다." 

그러자 임금이 탄식하여 이렇게 말했다.

"선생께서는 풀어 주시오! 선생께서는 풀어 주시오! 제발 나의 인()을 손상시키지 말아 주시오."

[임성삼의 주(); 현재는 법을 무시는 일이 그다지 없어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적을 것이다. 그러나 안자의 인간중심의 이 생각은 매우 귀중한 것이다.]


2 장 충간(忠諫)에 관한 이야기들 하()

p 70

경공이 사냥을 갔다가 산에 올라가서는 호랑이를, 못가에 이르러서는 뱀을 보았다. 돌아와 안자를 불러 물었다.

"오늘 과인이 사냥을 갔다가 산에 올라가서는 호랑이를 보았고, 못가에서는 뱀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상서롭지 못한 징조가 아닐는지요?" 

그러자 안자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나라에는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있었던 일은 그 속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무릇 그 나라에 현인(賢人)이 있는데도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 불상(不詳)이요,

알기는 하되 등용시키지 않는 것이 두 번째 불상이요,

등용시켜 놓고도 그에 알맞은 임직(任職)을 주지 않는 것일 세 번째 불상입니다 

소위 말하는 불상이란 이와 같은 것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방금 산 위에서 호랑이를 본 것은 그곳이 호랑이의 서식처이기 때문이요, 못가에서 뱀을 본 것은 그곳에 뱀의 굴이 있기 때문입니다.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를 보고, 뱀의 굴에서 뱀을 본 것이 어찌 상서롭지 못한 일이겠습니까?"

[임성삼의 주(); 우리도 안자와 같이 여러 조짐에 대해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쓸데없는 일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바란다.]


p 91

경공의 주구(走狗)가 죽자, 경공이 밖으로는 그 개의 관을 만들어 오라 하고, 안으로는 제사를 지내 주도록 명하였다.

안자가 이를 듣고 간하자, 경공이 이렇게 변명하였다.

"개가 미물(微物)이기는 하나, 특별히 좌우 신하들과 웃음거리나 삼을까 하고 그러는 것일 뿐입니다." 

이 말에 안자가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거두어 이를 백성에게 되돌려 주지는 못하면서, 그 재물을 마구 버려 좌우의 웃음거리나 삼겠다니오! 가난한 민중의 근심에 대해서는 오만하게 굴면서 좌우의 웃음은 높이 사다니요.

그렇게 하면 이 나라에 아무런 희망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고아나 늙은이는 헐벗고 굶주려 죽어가는데 그까짓 개의 죽음에 제사를 지내고 관까지 마련하다니요. 백성이 이 소문을 들어보십시오. 틀림없이 임금을 원망할 것입니다. 또 제후가 이 소문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나라를 얕볼 것은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백성으로부터는 원망이 모여들고, 제후로부터는 얕보이는 일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이를 별 것 아닌 일로 여기시다니오! 임금께서는 이를 헤아려 주십시오!" 

경공은 이 말에 "좋습니다" 하고는, 얼른 주방장에게 개를 요리토록 하여 조정 신하들에게 나누어 먹여 주었다.

[임성삼의 주(); 요즈음의 애완견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 세계 인구의 1/3은 확실하게 영양 결핍이다. 또한 중국사람들도 개를 먹었다는 문헌적 증거가 여기있다.

사기 열전에는 다른 왕이 말이 죽었을 때 관을 짜서 장사지내려는 것을 어떤 신하가 동일한 논리로 막아 사람들의 뱃 속에 장사지낸 이야기가 나온다.]


p 92 [아래 이야기는 사기 열전에도 나와 있다. 二桃殺三士 이도살삼사(두 개의 복숭아로 선비 세 사람을 죽이다.]

공손접, 전개강, 고야자가 함께 경공을 섬기게 되었는데, 모두가 그 용력(勇力)이 호랑이를 잡을 정도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상국(相國; 국무총리)인 안자가 그들 앞을 지나도 세 사람은 일어서지 않을 정도로 거만하였다.

이에 안자가 들어가 경공을 뵙고 이렇게 말했다.

"제가 듣건대 명철한 임금이 용력(勇力)의 장사들을 양성하매 위로는 군신지의(君臣之義)를 갖추고, 아래로는 아랫사람을 거느리는 윤리를 구비하여, 안으로는 폭력으 금하고, 밖으로는 적에게 위엄을 보여 윗사람은 그들로 인해 이로움을 얻고, 아랫사람들은 그들의 용맹에 굴복한다고 하였습니다.

[임성삼의 주(); 이것이 나라에서 장사(壯士)들을 기르는 목적이다. 현대에는 장사를 기를 필요가 권투, 레슬링 등 격투기와 경호임무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 지금 임금께서 용력(勇力)의 장사들을 양성함에는 위의 모든 것이 없습니다. 이는 나라를 위태롭게 할 인물들입니다. 내쫓아 버리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자 경공도 이렇게 근심을 표명하였다.

"세 사람을 쳐 없애려 해도 성공하지 못할까 두렵고, 찔러 없애려 해도 맞히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는 터입니다."

이에 안자가 "그들은 모두 그 힘만 믿고 공격하는 자들입니다. 힘에서는 서로를 적으로 여길 인물들입니다. 장유(長幼)의 예절이 없습니다."라고 하며, 사람을 시켜 세 사람에게 복숭아를 두 개만 보내면서 이렇게 말하도록 임금에게 제의하였다.

"세 사람은 어찌 그 공을 헤아린 다음 복숭아를 먹지 않는가 

[임성삼; 내용이 길어 줄이면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자기의 공을 자랑하며 먼저 먹었다. 못 먹은 세 번째 사람이 자기의 공이 더 큰 것을 말하자, 먼저 먹은 두 사람은 부끄러워 자살하였다. 나머지 한 사람도

"두 사람이 죽었는데 나 혼자 살아 있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다. 남에게 말로써 부끄러움을 주고 소리로 자랑하였으니 이는 의()가 아니다. 후회를 하면서 죽지 않는다면 이는 용기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목을 끊고 죽었다. 두 개의 복숭아로 세 장사(壯士)를 죽인 것이다.(이도살삼사, 二桃殺三士)]  

이를 지켜본 사자(使者)"이미 다 죽어버렸습니다."라고 보고하자, 경공은 선비의 예에 맞추어 장례를 치러 주었다.

[임성삼의 주(); 여러 나라가 서로 전쟁을 치열하게 하던 춘추시대에도 힘만 있고 예절이 없이 분수를 모르는 장사는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600 년 후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양보음"이라는 시를 남겼다. "고문진보(古文眞寶)" 책에 전한다.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나가지 전에 융중에 기거하며 항상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가 남긴 유일한 시()이다. 글은 유명한 출사표가 있다.

걸음을 옮겨 제의 성문을 나서면

멀리 탕음리가 보인다.

그 속에 묘 셋이 있으니

서로 겹친 듯 연이어 있는 모양이 비슷도 하다.

이 누구 무덤이냐 물으니

전강, 고야씨 등의 무덤이라 한다.

힘은 능히 남산을 밀어 던질만 하고

문장은 능히 지기를 끊을 만하였건만

일조(一朝)에 음해(陰害)를 입어

복숭아 두 개가 세 장사를 죽였다. 二桃殺三士

누가 이같은 모략을 하였는가?

국상(國相)인 제나라의 안자더라.

이 시로 보면 제갈공명은 안자를 좋게 보지 않고, 장사(壯士)를 귀중히 여기었다고 생각된다.]


3 장 질문에 관한 이야기들 상()

장공[任註; 莊公, 제의 군주, 재위 BC 553~548]이 진[任註; , 춘추시대의 중국 중심부에 있던 나라, 진시황의 진()과는 다름]나라를 치고자 하여 안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안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안됩니다. 임금께서는 얻고 싶은 것을 얻었는데 그 욕심이 그칠 줄 모르고, 욕망대로 다 해보고도 그 뜻은 더욱 교만하십니다. 얻고도 욕심을 더 부리게 되면 위험해지고, 욕심을 길러 뜻이 교만해지면 곤궁에 빠집니다.

지금 임금께서는 용력(勇力)의 선비들을 임용하여 명철한 군주를 치겠다 하시니,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그것이 오히려 나라의 복이 될 것입니다. 덕은 없으면서 공만 세우게 되면 틀림없이 근심거리가 임금께 닥쳐올 것입니다."

[임성삼의 주();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이 설명에 장공은 얼굴빛을 일그러뜨리며 불쾌히 생각하였다. 이에 안자는 사직하여 신하되기를 그만두고 물러나 궁핍하게 살았다. 그 집 뜰 아래는 잡초가 무성하였고, 문 밖에는 가시덤불이 자랄 정도로 궁벽하였다.

[임성삼의 주(); 자기의 직책에서 이렇게 과감히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

장공은 끝내 용력의 선비를 등용시켜 서쪽 진나라를 쳐서 상당한 땅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 년이 지나자 백성은 흩어지고, 자신은 신하인 최()씨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p 111

경공이 안자에게 물었다.

"나라를 다스림에 가장 큰 근심거리는 무엇입니까?"

이에 안자가 "근심되는 일은 바로 사당(祠堂)의 쥐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경공이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무릇 사당은 나무를 얽어 묶고, 그 위에 흙을 발라 만들었습니다. 쥐란 놈이 그곳에 의탁해 살고 있지요. 이 쥐를 잡으려고 불을 지르자니 나무가 다 탈까 두렵고, 물을 부어 쫓자니 흙이 무너져 내릴까 두렵습니다. 이 쥐를 쉽게 잡아 내지 못하는 것은 그곳이 사당이기 때문이지요.

나라에도 이런 사당의 쥐 같은 자가 있습니다. 바로 임금의 좌우 신하들이지요. 이들은 안으로는 임금이 선악(善惡)을 구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으며, 밖으로는 그 권세를 팔아 백성에게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을 죽이지 않으면 혼란이 일어날 것 같고, 죽이자니 임금에게 의탁하여 마치 임금의 뱃속에 있는 경우와 같습니다. 이 역시 나라의 사서(社鼠)입니다."


4. 질문에 관한 이야기들 하()

p 141

경공이 안자에게 물었다.

"지난날 우리 선군이신 환공께서는 3백 승[任註; , 전차의 수를 세는 단위, 춘추시대에는 전차의 수로 국력을 표시하였다. 천자(天子)는 만 승, 큰 나라는 천 승]의 작은 힘에서 출발하여, 모든 제후를 합하고 천하를 바로 잡았습니다. 지금 나는 수레가 1천 승이나 되니 가히 선군이신 환공의 뒤를 따를 수 있겠습니까?"

안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환공께서 3백 승의 작은 국력으로 모든 일을 이루신 것은, 왼쪽에는 포숙이 오른 쪽에는 관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임금께는 왼쪽과 오른 쪽에 배우가 있으며, 참언하는 자가 앞에, 아첨하는 자가 뒤에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환공의 유업을 뒤따를 수 있겠습니까?"


p 166

양구거가 안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세 임금을 섬기셨습니다. 임금마다 그 마음이 각기 다른데도 그대는 모두 순응하였습니다. 어진 사람은 진실로 그 마음이 여러 가지입니까?"

[임성삼의 주; 안자가 아첨을 하여 여러 명의 임금에게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다.]

안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듣건대 순종과 게으름 없이 실천하면 백성을 부릴 수 있고, 강포하게 굴어 충성 없이 한다면 단 한 사람도 부릴 수 없다 하였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는 1백 임금도 섬길 수 있지만, 세 가지 마음으로는 단 한 임금도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임성삼의 주;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백성을 위해 벼슬을 한 것이지 임금을 위해 벼슬한 것이 아니므로 어떤 임금아래서이든 상관없이 벼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자도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임금아래서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서 이렇게 말했다.

"제자들아 이를 기록해두라. 안자는 한 마음으로 1백 임금을 섬긴 자로다."

5 장 여러 가지 잡다한 이야기들 상()


p 176

최저가 장공을 시해(弑害)하고 경공을 세워, 그 자신이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 뒤 여러 장군과 대부들, 그리고 저명한 선비와 서인까지 구덩이 옆에 세워놓고 다음과 같이 맹약(盟約)을 하게 하였다.

"최저의 편을 들지 않고 공실(公室)의 편을 드는 자는 상서롭지 못한 결과를 맛볼 것이다."

망설이는 자는 죽여 없앴다.

죽음을 당한 자가 일곱 명이 된 후 안자의 차례가 되었다. 안자는 말했다.

"! 최저가 무도하게 굴더니, 끝내 임금을 시해하였구나. 오히려 공실(公室)의 편을 들지 않고 최저의 편을 드는 자는 화를 입으리라."  

최저가 안자에게 제의하였다.

"그대가 말을 바꾸면 이 제나라를 그대와 함께 차지할 것이오. 그대가 말을 바꾸지 않는다면, 창이 그대의 목을 겨누고, 검이 그대의 심장을 겨눌 것이다. 오직 그대의 결정에 달렸다."

안자는 이렇게 거절하였다.

"나를 칼날로 위협한다고 해서 그 의지를 잃는다면, 나는 용기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또 나를 이익으로 회유할 때 이를 위해 임금을 배반한다면, 나는 의롭지 못한 자가 된다. ...

나는 뜻을 굽힐 수 없다."

[옆의 사람들이 최저를 만류하여 안자가 살아난다.]


p 179

경공이 안자를 동아 땅의 재()로 임명하였다. 3 년이 지나자 안자에 대한 비방의 소리가 들려 오자, 경공은 불쾌히 여겨 그를 소환하여 면직시켰다. 그러자 안자가 이렇게 부탁하였다.

"저는 저의 과실이 무엇인지 압니다. 청컨대 다시 3 년만 더 동아 땅을 다스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면, 틀립없이 좋은 소문이 나라안에 퍼지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경공은 차마 면직시키지 못하고, 안자로 하여금 다시 동아 땅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런데 3 년이 지나자, 과연 그를 칭송하는 소문이 들려 오는 것이었다. 경공은 기쁜 나머지 안자를 불러 상을 내릴 참이었다. 그러나 안자는 이를 사양하고 받으려 하지 않았다.

경공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지난날 제가 동아 땅을 다스릴 때는,

지름길을 이용하려는 간악한 무리의 통로를 막고 사악한 무리가 드나드는 곳에 문지기의 임무를 강화시키자, 이에 불만을 품은 부패한 무리들이 저를 미워하였습니다.

또한 검소하며 효도에 힘쓰고 형제간에 우애있는 자를 들어 쓰고, 게으르고 비뚤어진 자를 처벌하자, 나태한 백성들이 저를 미워하였습니다. 그 런가 하면 재판을 할 때 귀한 자나 강한 자를 피하지 않고 공정히 하자, 귀하고 강한자들이 저를 미워하였습니다.

좌우 신하들의 요구가 있을 때도 법에 맞으면 들어 주고 맞지 않으면 거부하였더니, 좌우 측근들조차 저를 미워하였습니다. 그 리고 귀인을 섬기면서 이들을 대접할 때도 그 예에 지나침이 없자, 귀인들 또한 저를 미워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세 부류의 사악한 자들이 밖으로 저를 비방하였고, 두 부류의 참소자들이 안으로 저를 비방하였던 것이며, 이것이 3 년 동안 임금의 귀에까지 들려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이를 바꾸었습니다. [일일이 위와 반대로 한 행동을 열거한다.] 이렇게 되자 세 부류의 사악한 자들이 밖으로 저를 자랑하기에 여넘이 없고, 두 부류의 참소자들도 안으로 저를 추켜세우기에 바쁩니다. 이것이 3 년 동안 임금의 귀에까지 들려 왔던 것입니다.

지난날 제가 하였던 일은, 벌을 내릴 일이라 여기셨지만 사실을 상을 내렸어야 할 경우였고, 지금 제가 한 일은 오히려 징벌을 받을 일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감히 상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공은 안자가 어질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나랏일을 모두 맡겼다. 그로부터 3 년이 지나 제나라는 크게 흥성하였다.


p 182

경공 시절에 기근이 들었다. 안자가 백성을 위해 곡식을 풀 것을 청하였지만, 경공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마침 누대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어서, 안자는 관리로 하여금 공사에 참여한 백성들에게 노임을 훨씬 높여 주도록 하고는, 누대의 규모를 훨씬 크게 하였다. 게다가 공사의 진척 날짜를 늦추면서 급히 서둘지 말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3 년을 끌면서 천천히 공사를 진행하였고, 그 사이에 백성도 진휼시킬 수가 있었다. 따라서 임금은 자기의 누대를 짓는 일에 즐거움을 느꼈고, 백성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군자가 이를 듣고 이렇게 평하였다.

"정치의 방법만 따지면, 안자는 곡식을 풀어 백성에게 나누어 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지 못하자, 사물의 처리에 의탁하여 이를 맞추었도다."

[임성삼의 주(); 이와 비슷한 정책을 현대 국가에서도 시행한다. 미국이 경제공황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시행한 테네시 강 유역 개발 공사(TVA; 1933 )도 이와 유사한 정책이다. 단지 안자가 2500 년 빠를 뿐...]


p 185

경공이 길거리에서 걸식을 하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인 듯합니다."

그러자 안자가 나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이 계신데 어찌 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관리로 하역금 이를 잘 부양토록 하면, 그 즉시 천하에 알려질 것입니다."

[임성삼의 주(); 고아와 걸인의 문제를 국가의 문제로 인식한 것이 이렇게 오래된다. 그러나 현대 국가 중 완벽하게 이 문제를 해결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


p 187 [빼어난 이야기이다. 사기 열전에도 나온다.]

경공이 [혼자서] 술을 마시다가, 밤이 되자 안자의 집으로 술자리를 옮겨 그 즐거움을 계속하려 하였다.

앞에 선 심부름꾼이 안자의 집 문 앞에 이르러 "임금께서 오십니다."라고 하자, 안자가 예복을 걸치고 문 앞에 (나와) 서서 이렇게 물었다.

"옆 나라의 동정은 아무 일 없습니까? 국내에는 아무 일 없습니까?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때도 아닌데 이렇듯 한밤에 욕된 걸음을 하셨습니까?"

그러자 경공이 말했다.

"좋은 술맛과 훌륭한 음악이 있어, 원컨대 선생과 함께 즐기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에 안자가 이렇게 거절하였다.

"자리를 깔고 술그릇을 마련해 드리는 일은 따로 임무를 맡은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감히 그런 일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임성삼의 주(); 연회와 사교를 좋아하는 중국에서 이런 대답을 한 신하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경공은 하는 수 없이 사마양저[任註; 사마양저는 병법의 대가로 제나라의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이었다.]의 집으로 갔다. 앞선 심부름꾼이 문 앞에 이르러 "임금께서 오십니다"라고 하자,

양저가 갑옷과 투구를 갖춘 채 창을 잡고 문 앞에서 물었다.

"옆 나라에 무슨 군사 행동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까? 대신들 가운데 누가 반란이라도 일으킨 것은 아니겠지요? 임금께서는 어찌하여 때도 아닌데 이렇듯 한밤에 욕된 걸음을 하셨습니까?"

경공은 역시 똑같은 말을 하였다.

"좋은 술맛과 훌륭한 음악을 선생과 함께 즐기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이에 사마양저 역시 거절했다.

"자리를 깔고 술그릇을 마련해 드리는 일은 따로 임무를 맡은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감히 그런 일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경공은 다시 양구거의 집으로 갔다. 심부름꾼이 이르러 왕이 온다고 하자 양구거가 왼손에는 거문고를 오른 손에는 학을 안고 노래를 부르며 나오는 것이었다. 이를 본 경공은 신이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즐겁도다. 오늘 저녁의 술자리여! 앞서의 두 사람이 없었다면 어찌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으며, 이 한 사람이 없었다면 누구와 더불어 내 자신을 즐길 수 있으리요?"

군자가 이를 듣고 이렇게 평하였다.

"성스럽고 어진 임금에게는 모두가 도움되는 친구일 뿐, 즐거움에 빠지게 하는 신하는 없었다. 그러나 경공은 그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을 등용함으로써 겨우 망하지는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p 188

안자가 경공을 모시고 있을 때 날이 추웠다. 이에 경공이 안자에게

"청컨대 따뜻한 음식을 좀 가져다 주시오."라고 부탁하자 안자가

"저는 임금께 식사를 갖다 바치는 그런 신하가 아닙니다. 감히 거절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경공이 다시 "그러면 갖옷 좀 가져다 주시오"라고 부탁하자, 역시

"저는 임금께 자리나 깔아 드리는 그런 신하가 아닙니다. 감히 거절합니다."

라고 냉정히 대답하였다.

그러자 경공이 "그러면 선생은 과인에게 있어서 무얼하는 자입니까?"라고 묻자 안자가 대답하였다.

"저는 사직지신(社稷之臣)입니다."

이에 경공이 사직지신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고 못마땅하게 여기며 물었다.

"무릇 사직지신이란 능히 사직을 일으켜 상하의 직위를 구별하고, 그 이치에 맞게 부려서 백관의 질서를 제정합니다. 또 마땅한 것을 맞게 시키고, 사령(辭令)을 만들어 사방 나라에 퍼지도록 하는 자입니다."

이로부터 임금은 예가 아닌 경우로 안자를 불러 시키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p 196

경공이 기 땅을 순유하다가 금호(金壺)를 발견하였는데, 그 속을 살펴보니 단서(丹書)가 있었는 데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생선을 뒤집어 먹지 말고, 말은 노마(駑馬; 걸음이 느린 말)를 타지 말라."

경공은 이렇게 해석하였다.

"훌륭하도다 이 말이여. 생선을 뒤집어 먹지 말라는 것은 그 비린내를 싫어하기 때문이요, 노마를 타지 말라는 것은 멀리 가지 못함을 걱정하여 그리하였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안자가 나섰다.

"그렇지 않습니다. 생선을 뒤집어 먹지 말라는 것은 백성의 힘이 다할 때까지 부리지 말라는 뜻이고, 노마를 타지 말라는 것은 불초한 자를 측근으로 등용시키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경공이 의심을 나타내었다.

"기 나라에 이런 경구(警句)가 있었는데 어찌하여 망했습니까?"

이에 안자가 설명하였다.

"망한 이유가 있지요.

제가 듣기로 군자가 경계로 삼을 명언이 있으면, 이를 문설주에 걸어 놓고 늘 보는 법입니다.

기 나라는 이렇게 좋은 말을 금호 속에 붉은 글씨로 써 두었으니 망하지 않고 그밖에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임성삼의 이야기;

중국에서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요, , , 탕 임금을 꼽는다. 이미 <대학>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탕임금은 목욕통에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오로지 매일 새로워지고, 매일매일 새롭고, 그리고 또 날로 새로워라"라고 적어놓고 매일 보았다.

논어에 의하면 공자의 제가 자장(혹은 자로?)"言忠信 行篤敬 충실하고 믿음성 있는 말만 하며 독실하고 경건한 행동을 하라"라는 말을 듣고는 허리 띠의 늘어뜨리는 부분에 적어놓고 한 순간도 잊지 않도록 노력하였다고 한다.

사전에서 좌우명(左右銘)이란 "늘 옆에 갖추어 두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라고 설명한다(내 기억에 의하면 한자로 座右銘으로 좌석의 오른 쪽에 써 놓고 늘 보는 문구이다). 각자 좌우명을 만들어 항상 잊지 않도록 노력하기를 권한다.

유태인들은 집의 문설주에 항상 성경 구절을 적은 작은 상자를 달아 놓고 집을 드나들며 말씀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와는 조금 다르나 요즈음 나는 좋은 말씀을 정리하여 매 주일 여러분에게 보내는 과정에서 그 좋은 글들을 적는 것 외에도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다시 읽게 된다. 이것이 가능하게 한 여러분에 감사할 뿐이다.]

6 장 여러 가지 잡다한 이야기들 하()

p 221

경공의 등에 종기가 나자, ()자와 국()자 두 신하가 이렇게 요청했다.

"저희의 직책으로 보아 직접 그 종기를 만져드려야겠습니다."

고자가 나아가 그 종기를 살펴보자, 경공이 물었다.

"뜨겁습니까?"

[신하가 대답하였다.] "뜨겁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마치 불 같습니다."

"그 색은 어떻습니까?"

"마치 덜 익은 오얏 같습니다."

"크기는 어떻습니까?"

"콩만합니다."

"파인 부분은 어떻습니까?"

"마치 구멍 뚫린 가죽신 같습니다."

두 사람이 나가고, 안자가 뵙기를 청하였다.

경공이 먼저 "과인은 의관을 갖추고 선생을 뵈어야 하나, 병이 나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욕되시겠지만 과인의 종기를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

안자는 손을 씻고 따뜻이 한 다음, 깔개를 펴 자리를 잡고 꿇어 앉아 만져 보았다. 그러자 경공이 물었다.

"그 열이 어느 정도입니까?"

"해와 같습니다."

"그 색을 어떻습니까?"

"푸른 옥 같습니다."

"크기는 어떻습니까?"

"(; 둥근 옥 벽)만합니다."

"그 파인 부분은 어떻습니까?"

"마치 규(; 홀 규) 같습니다."

안자가 나가자 경공이 이렇게 말했다.

"내 안자 같은 군자를 보지 못하였다면, 국씨나 고씨 같은 야인의 졸렬함을 판별해 내지 못할 뻔하였구나."

[임성삼의 주(); 이 둘의 차이는 대단히 큰 것이다. 항상 깨끗하고, 높은 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나타난다.]


p 223

안자가 오()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오나라 임금이 외교 접대 담당 관리에게 말했다.

"내가 듣기로, 안영은 북방에서 말솜씨가 뛰어나고 예법에도 밝은 자라 하더라. 그가 나타나면 천자(天子)께서 그대를 보고자 하노라고 말하라."

[임성삼의 주(); 그 당시는 아직 주나라가 있어 오나라의 왕은 천자라고 칭할 수 없었다.]

이튿날 안자가 일정대로 오나라 임금을 만날 순서가 되자 관리가 말하였다.

"천자께서 당신을 만날 차례입니다."

안자는 머뭇거리기를 세 번,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우리 임금의 명령을 받고 오나라 임금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사명을 띠고 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불민(不敏)하고 미혹해서 그만 천자의 조정으로 잘못 온 것 같습니다. 감히 묻건대 오나라 임금은 어디에 거처하고 있습니까?"

이 말을 전해듣고 오나라 임금이 말하게 했다.

"부차[오나라 임금의 이름, 재위 BC 495~473, 월왕 구천과의 여러 이야기가 전한다]가 그대를 만나고자 합니다."

하고는 제후의 예로써 맞이하여 만나게 되었다.

안자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초나라 사람들이 안자의 키가 작은 것을 놀려 대문 곁에 있는 작은 쪽문으로 들어가게 했다. 이에 안자가 들어가지 않고 버티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의 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자는 개구멍으로 들어가지만, 지금 여기는 초나라이므로 이런 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초나라 사람들은 할 수 없이 큰 문으로 들어가게 했다.

안자가 초나라 임금을 만나자, 그 임금이 이렇게 빈정거렸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습니까? 그대와 같은 자를 사신으로 보내다니오!"

[임성삼의 주(); 사기 열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안자의 키는 120 cm 정도였다.]

그러자 안자가 이렇게 되물었다.

"제나라의 수도는 매우 크고 사람이 많아, 사람들이 소매를 올리면 온 도시에 그늘이 드리워질 정도이고, 땀을 한꺼번에 뿌리면 비가 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깨가 마주 닿고 발꿈치가 이어질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어찌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까?"

[임성삼의 주(); 중국식 과장법이다. 사기 열전에서 소진이 사람을 설복시킬 때도 위의 표현을 사용한다.]

임금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겨우 그대 같은 이가 사신으로 왔단 말이오?"

안자가 대답하였다.

"저희 제나라는 사신을 임명할 때, 각각 그 상대 임금에 맞추어 하지요. 어진 자는 상대 임금이 어질 때 임명하고, 불초한 자는 상대 임금이 불초할 때 사신으로 보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제가 가장 불초합니다. 그래서 이 초나라 사신으로 가장 타당한 자입니다."


p 225

초나라 임금이 안자를 꺾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안자와 술을 먹고 있을 때 관리가 한 사람을 결박하여 임금 앞에 왔다. 임금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 사람은 제나라 사람인데 도둑질하다 붙잡혔습니다."

임금이 안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귀국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에 능한 모양이지요?"

안자가 자리를 피해 앉으며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 귤나무가 남쪽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북쪽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 하였습니다. 잎은 비슷하나 열매 맛은 다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물과 흙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제나라에서 생장하는 사람은 도둑질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초나라에 들어와서 도둑질을 하는 것을 보니, 이 나라의 풍토가 사람으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임금이 웃으며 사과하였다.

"과인이 성인(聖人)을 희롱하다가 거꾸로 허물을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p 235

안자가 제나라의 재상이 된 지 3 년만에 정치는 평온해지고 백성들은 즐거움을 누렸다. 양구거가 안자의 점심을 보니 고기가 부족하였다. 경공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자, 다음날 경공이 안자에게 넓은 땅을 봉해 주었다.

그러자 안자가 이를 사양하여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은 자가 있음을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하면서 원망이 없는 자가 있다면 바로 저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가난하면서 원망이 없는 그 사실을 스승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봉지를 내려 주시니 이는 저의 스승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청컨대 사양하겠습니다."


p 237

안자는 제나라 재상의 신분이면서도 베옷과 겨우 겉껍질만 벗겨낸 거친 곡식으로 지은 밥을 먹었고, 기껏해야 달걀 다섯 개, 그리고 나물이 고작이었다.


p 245

양구거가 안자에게 말하였다.

"저는 죽을 때까지 선생에게 미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안자가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듣건대

행동으로 하는 자는 늘상 성취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걷는 자는 끝내 목적지에 닿게 마련이라 하였습니다.

저라고 해서 다른 사람과 특이하게 다른 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움직여 포기하는 일이 없고, 항상 실행하면서 쉬지 않을 뿐이지요. 어찌 미치지 못한단 말입니까?"

[임성삼의 주(); 항상 쉬지 않는 것이야 말로 가장 힘든 것이다.]

7 장 중복되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 상()


p 255

경공이 꿈속에서 혜성을 보고 불길하게 생각하여, 이튿날 안자를 불러 물어보았다.

"과인이 듣기로 혜성이 나타나면 반드시 어느 나라인가는 망한다고 하던데, 어젯밤 꿈속에서 과인이 혜성을 보았습니다. 내 점몽하는 자를 불러 이를 점쳐 보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그러자 안자가 이렇게 설명하였다.

"임금께서 평소 절제가 없고, ()하는 바른 말을 듣지 않고, 끝없이 일을 벌이며, 세금을 한없이 거두어 들이고, 백성을 부리되 더 이상 못 부려먹어 안달을 내는 듯이 하고 있으니, 만민의 원한으로 보아 어찌 유성 하나로 이렇듯 법석을 치십니까?"

[임성삼의 주(); 거듭 이야기하나 옛 분들도 점을 치는 것을 찬성한 적이 없다. 망해가는 나라에서는 점이 언제나 성행했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성(理性)으로 판단하는 것을 포기했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8 장 중복되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 하()


p 299

경공이 우산에 놀이를 갔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렇게 말하였다.

"청컨대 안자께서 한 가지 소원을 말씀해 보시지요."

그러자 안자는 사양하였다.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경공이 다시 재촉하자 안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임금이 있어 두려워할 대상이 있고, 아내가 있어 돌아갈 곳이 있으며, 아들이 있어 남겨 줄 것이 있으니 이런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경공이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안자의 소원이여! 다시 한 가지만 더 말씀해 보시지요."

"저는 임금께 명철함이 있고, 아내는 재주가 있으며, 집은 가난하지 않고, 좋은 이웃이 있기를 원합니다. 임금이 명철하면 날마다 저의 행동이 순탄하고, 아내가 재주가 있으면 저로 하여금 항상 잊지 않게 하며, 집이 가난하지 않으면 친구 사이에 서운함을 주는 일이 없게 되고, 좋은 이웃이 있으면 날마다 군자들을 보게 되지요. 이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경공은 다시 만족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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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삼의 이야기

공자의 논어에 비해 읽기 쉽고, 잘 이해되며, 재미있고, 가끔은 통쾌한 이야기들이다.

안자의 정치적인 능력은 공자를 능가한다. 청렴성, 굳센 기질, 국민을 위하는 마음, 그러면서도 순간 순간의 재치있는 순발력 등 인간으로서의 모든 면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안자였다. 사마천이 안자를 가까이 모시기 위해 그의 마부라도 하겠다는 말이 옳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자춘추를 여러번 읽으면 논어에 비해 많이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지는 여러분이 분석해 보기 바란다.

공자의 노나라 군주와 안자의 제나라 군주가 정상회담을 할 때, 각 나라의 책임자가 공자와 안자였다. 안자가 적어도 20 살은 위였던 것 같으나 공자는 대등한 입장에서 약한 노나라가 굴욕을 당하지 않게 조처하였다. 뛰어난 두 사람의 만남에서 극적인 대화는 남아 있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언제인가 언급될 것이다.

앞에 소개했던 다음의 말로 그치려한다.

양구거가 안자에게 말하였다.

"저는 죽을 때까지 선생에게 미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안자가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듣건대 행동으로 하는 자는 늘상 성취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걷는 자는 끝내 목적지에 닿게 마련이라 하였습니다.

저라고 해서 다른 사람과 특이하게 다른 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움직여 포기하는 일이 없고, 항상 실행하면서 쉬지 않을 뿐이지요. 어찌 미치지 못한단 말입니까?"


(퍼옴. 茶守將 블로그, http://cafe.daum.net/ektnw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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