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산책
설날. (2025.1.29.)
신정을 쇠니 명절의 기분을 못 느낀다. 뉴스를 통해 간간히 귀성길 교통난 소식과 역이나 터미널에서 귀성객 인터뷰가 가볍게 감성을 건드릴 뿐 전혀 체감이 안된다. 확실히 명절이란 대가족의 행사다. 부모를 정점으로 하는 가족들의 관계로 모여 그에 걸맞는 음식들을 장만하고 정점 이 전의 조상들에게 예를 표하는 '차례'라는 형식이 곁들여야 명절 기분이 난다. 우리의 명절은, 죽은 뒤에도 기억해주기를 바란 선조들의 소망과 조상의 뿌리를 바탕삼아 가풍을 세우고 리더쉽을 발휘하고자 열망했던 살아있는 가장들의 고뇌가 결합된 합작품이었다.
설날의 분위기를 즐기고자, 또 2025년 만들어야 할 사진집 <반도의 초상-한성,한양,서울>(가제)을 시작해 보고자 나선 경복궁을 산책하다. 먼저 을미사변을 촉발한 명성황후(당시 민비) 살해 사건의 현장이었던 건청궁의 곤녕합 옥호루를 찾았다. '안내판에 의하면', 옥호루 앞 마당에서 살해하고 동편 언덕(아마도 홍릉?)에서 불태워 매장되었고 후에 덕수궁으로 옮겨졌다가 장례를 지냈다고 하니, 사실을 다시 확인한 다음 덕수궁도 찾아봐야겠다. 지금은 고종과 함께 합장해 남양주에 있는 홍릉에 묘소가 조성된 것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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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에 일제지배에서 왕의 합장과 이장이 이루어진 것은, 당시 일제가 1910년 한일합방 후 사망한 조선 왕족들의 무덤을 릉(陵)에서 묘(墓)로 격하하기로 정한 것에 이유가 있다. 만약 그에 따르면 1919년에 사망한 고종황제의 무덤은 평민과 마찬가지로 묘가 된다. 그러나 1910년 이전에 살해된 명성황후(홍릉)과 합장을 하면 릉의 격을 갖게 된다. 하여 합장한 후 현재의 홍릉(남양주)으로 이장하였던 것이다. 순종의 경우도 1926년 사망하였으나, 한일합방 이전 사망해 유릉으로 안장되었던 황비의 릉에 합장하고 현재의 장소로 이장하여 릉의 격을 유지한 형식상의 편법으로 묘가 되는 것을 피하였다.
현재 남양주의 홍유릉(洪裕陵)에는 고종과 순종의 릉과 함께 영친왕(英園), 영친왕의 차남이자 마지막 왕세자 이구의 회인원(懷仁園), 의친왕, 덕혜옹주, 기타 귀인 등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이 곳은 조선말의 왕이자 유일한 황제의 묘역이고 그 가족묘가 조성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경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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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
장안당
곤녕합 옥호루
곤녕합 옥호루
향원정
신무문